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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울건가요?  


얼마 전, 정신질환이 있는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양친이 돌아가신 뒤 동생을 거두는 형제는 없어 그는 어쩔 수 없이 동생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인 동생과 같이 사는 것은 고역이었고, 동생의 치료비를 모두 부담하기 어려워 동생을 세대에서 분리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의료보호대상자로 등록시켰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부담 없이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이 동생은 인권위에 진정을 했고, 조사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밝혀져 동생은 퇴원할 예정이다. 그의 입장에서 동생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동생은 사리분별을 못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거나, 행인을 놀라게 해 경찰서에 갈 것이다. 그러면 경찰은 내담자를 비롯한 형제들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고, 결국 동생의 뒤치다꺼리는 그가 맡게 될 것이다. 그는 인권위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이치에 맞지 않는 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무엇이 적절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이 사례와 관련한 법률을 살펴보자. 정신보건법 제24조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입원을 원하지 않더라도,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에 의해 정신질환자의 입원이 가능하다. 여기서 보호의무자는 정신보건법 제21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민법상의 부양의무자나 후견인을 말한다. 위원회에 전화하여 강제 입원을 주장하는 내담자들은 대부분 배우자, 부모, 자녀에 의해서 입원된 경우이다. 배우자, 부모, 자녀는 모두 민법상의 부양의무자에 해당이 된다. 이런 내용은 민법 제974조에 규정되어 있다. 민법 제974조에 따르면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간, 그리고 생계를 같이 하는 기타 친족 간에는 부양의무가 있다.

적절하지 않은 보호의무자에 의해 입원된 경우 중 상당수는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기타 친족의 동의로 정신질환자가 입원된 경우이다. 이 사례에서 내담자는 동생과 형제 사이이지만, 생계를 같이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한 보호의무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담자의 동의에 의한 동생의 입원은 위법이었다. 위법이 드러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일까?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것은 내담자의 동생이 자의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동생도 입원을 거부하였고 이러한 동생을 내담자는 설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담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동생을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내담자가 동생과 생계를 같이 하는 것이다.

동생이 혼자 살게 놔두면 되지 않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내담자가 동생을 책임질 의무는 없다. 일반적으로 부양의무는 경제적인 부양의무로 해석되는데, 장성하여 독립한 형제 사이에 서로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 사이에 경제적 부양의무가 없다고 해서 다른 형제의 어려움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혼한 이후에도 끈끈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동생을 나몰라라 하는 형은 비난받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생을 내버려둘 수 없는 내담자의 처지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그러면 동생과 함께 살면 되지 않을까? 이따금 내담자처럼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이 전화를 하곤 한다.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정신질환자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고, 그 피해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다소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정신질환은 치료에 오랜 기간이 걸리고, 때로는 치료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암이나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충만큼이나 정신질환자 가족들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부모자식 사이도 아닌 형제 사이에서 형이 자기 돈을 쪼개 동생 치료비로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담자의 상황이 딱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신병원에 입원된 동생의 인권이다. 비록 정신질환자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불편을 주더라도,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자기 의지에 따라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다시 사례를 살펴보면, 결국 동생의 의지에 따라 살게 하는 것이 '인권적인' 방법일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 동생과 같은 사람을 그와 같은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글: 김재왕(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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