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여성회관


<한미FTA를 반대하는 문화예술언론인 기자회견문>


제18대 국회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해놓고  
이와 정면충돌하는 한미FTA를 비준하는 것은 국제적 개망신이다


11월15일, 대통령이 국회를 다녀갔다. 미국과 재협상을 하라고 했더니 야당과 거래를 했다. 국회비준 후 미국과 ISD 재협상을 하겠단다. 그러자 지구 반대편 오바마도 힘을 실어줬다. 여당은 강행처리시점이 됐다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새삼 2010년2월25일을 떠올린다. 지금의 18대 국회는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했고 이로써 우리는 110번째 비준국가가 되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2005년10월 유네스코총회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2007년3월18일 발효되었고, 2011년5월 기준으로 117개 국가가 가입한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이다.

한미FTA가 풍전등화인데, 왜 우리는 문화다양성협약을 말하는가?

동협약 제20조 제1항의 규정 때문이다. “당사국은 이 협약을 다른 어떤 조약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당사국인 다른 조약들을 해석, 적용하거나 다른 국제적인 의무를 부담할 때 이 협약의 관련 규정들을 고려(shall take into account)한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협상되어온 과정과 국회 비준을 앞둔 협정문들은 완벽히 문화다양성협약을 한미FTA에 종속시키고 있으며, 문화다양성협약의 목적과 지도원칙, 적용범위, 당사국의 권리와 의무, 다른 조약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을 통째로 부정하고 말았다. 오직 한미FTA만을 위해 넋 나간 짓을 한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은 지극히 일반적인 가치와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즉, 문화가 일반상품과 똑같은 기준으로 취급되어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되고, 인류의 문화생태계를 복원하고 문화 본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한 각국의 제도적 노력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하고, FTA와 같은 무역협상에서 반드시 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는 어찌하여 한미FTA에 앞서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 하여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졌는가? 2006년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된 다음 해에 정부는 한미FTA 4대 선결조건 중 하나로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했다. 그리고 한미FTA 협상은 일사천리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다. 그러던 중 한미FTA는 소고기협상에서 뜻밖의 촛불을 만나 주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 한-EU FTA를 협상하던 정부는 체결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EU는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한 국가와만 FTA를 체결한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 정부를 향해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FTA만이 살길이라는 정부는 결국 차일피일 미루던 문화다양성협약을 서둘러 비준할 것을 요청했고, 18대 국회는 비준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는, 한미FTA 비준을 밀어붙이려 한다.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문화다양성협약의 의무 규정을 모른 체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 이면에는 문화다양성협약을 국민들이 잘 모르니 구렁이 담넘어 가듯 대충 넘어 가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분명히 밝히건데,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문화다양성협약을 이끈 견인차였고 유네스코의 공적 파트너인 문화다양성국제연맹(IFCCD)의 중요 회원국으로서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와 당사국 총회에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문화다양성협약과 정면 충돌하는 한미FTA를 강행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입법기관인 국회가 국제법상 심각한 법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고할 것이고 문화다양성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국제사회는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4대강의 침전물이 밑바닥에 쌓이고 있다. 한미FTA가 야기할 사회 각 분야의 쟁점들, 결국은 서민과 국가 경제를 살리는 핵심 요소들이 4대강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4대강에 가라앉는 침전물도 원래는 생명력이 넘치는 살아 있는 자연의 일부였으리라.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우리 문화의 내일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한미FTA 국회 비준을 한 게 아니다. 그래서 최대한, 최대한 할 말을 하려고 한다.

첫째, 한미FTA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라는 독소조항 하나만 뺀다고 해서 설계된 기본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보호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일례로 역진방지 조항이 그것의 하나다. 또한 94년 서비스협상(GATS)과 2001년 WTO도하라운드에서 채택한 방식, 즉 개방 분야만 명시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거꾸로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한다는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화가 포함된 서비스 시장의 이러한 개방 방식은 쉽게 선택할 성질의 것이 절대 아니다. 개방해선 안 될 분야에 대한 우리의 예측? 그건 현 시점에서 가능한 정부의 예측일 뿐이다. 정부가 더 많은 사회적 합의에 바탕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협약 제6조 당사국의 권리를 포기한 문화 분야에 있어서의 심각성이다.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시행령 일부개정안과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에 과한 고시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끼리 의결한 방송법시행령 개정안은 외국 제작물 1개 국가의 편성 비율을 현행 60%에서 80%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에 관한 고시 일부개정안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위성방송사업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국내제작 영화 편성비율을 현행 25%에서 20%로, 국내제작 애니메이션 편성비율을 현행 35%에서 30%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발효되면 결과가 어떨까? 특정 국가의 프로그램, 정확히는 미국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진다. 국내 콘텐츠 제작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가 한미FTA는 태생적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져 있었다고 강변하는 이유, 마치 위키리스크의 폭로처럼 2006년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국 정부의 약가적정화방안 발표를 미리 미대사에게 알리며 FTA 의약품 작업반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싸웠다”는 것처럼, ‘친미주의자와 한국인의 싸움’이라는 저의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손발이 착착 맞아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의심하지 않는 게 바보 아닌가? 역진방지 조항에 걸려 이 비율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면 협정 발표시점부터 3년 유예기간을 거쳐 외국인에게 종합편성·보도전문·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채널에 대해 간접투자가 현50%에서 100% 허용되게 된다. 한미 FTA 비준안 통과 이후, 이 또한 폭스채널 등과 같은 미국의 거대 방송사업자들이 한국법인을 설립, 직접적인 국내 시장 공략을 가능하게 한 발판에 다름아니다.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 콘텐츠 산업, 영화와 방송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다. 이 말의 뜻은 영화와 방송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콘텐츠 제작산업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자본을 갖춘 극소수의 국내 대기업만이 살아남고, 이들의 전략은 시간이 갈수록 글로벌로 흐르고 이 속에 담기는 문화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영화와 방송 분야의 수많은 군소 제작사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종편에 대한 특혜일 뿐이란 말이 떠돈다. 정말 적절하고 극단적인 사례다. 자체 콘텐츠 제작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종편이 의지할 것은 외국, 그것도 세계적 유행이 되고 있는 미국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종편은 남지만 국내 제작산업은 없는 것이다.

셋째, 문화콘텐츠가 전자상거래로 분류되어 막대한 미래의 부를 견인할 동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융합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개념의 광범위한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다. 그 범위는 점점 확대돼 가고 있는 바, 영상, 출판은 물론 순수예술 분야까지도 디지털로 전송 배포되는 모든 것은 전자상거래라는 개념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한미FTA의 발효 이후에는 적절한 보호조치(시장진입금지)를 제한 받는다. 디지털 제품의 온라인전송에 대한 무관세, 디지털 제품의 오프라인 전송의 관세폐지 등 디지털 제품에 대한 완벽한 비차별대우(대국민대우, 최혜국대우)를 보장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미치는 영향은 그나마 유보조치된 항목마저도 ‘종이 없는 무역(paperless trading)’의 활성화 목적 하에 끊임없이 장벽 제거 대상이 돼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상력으로는 그 규모를 파악할 수조차 없는 미래의 황금시장을 통째로 넘겨줄 수도 있다. 정부로서는 한미FTA로 인해 국내 산업에 대한 어떠한 진흥이나 육성, 보호 대책을 취할 수 없게 되는, 주권국의 문화정책의 자주권이 포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단순히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산업화되고 있고 미래 세계를 이끌 성장 동력의 핵심 콘텐츠다. 당장의 일자리가 아닌 미래의 일자리란 뜻이다. 당장의 먹거리가 아닌, 우리 서민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떳떳하게 구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산이란 뜻이다.

우리는 오늘, 한미FTA와 관련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다.
할 말은 아직도 많다. 그래서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주장을 책임 있는 분들을 모시고 분석해 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루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한미FTA를 반대하겠는가.

정부 역시 한미FTA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분야들을 인정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단 말로 대체한다. 결국 선대책이 아닌 후대책으로 야기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이렇다. 정부가 하려 하는 것 중에 선대책이란 것은 하나도 없다. 야당에게 협상으로 던진 ISD조차 후협상 즉, 후대책이다. 적어도 이런 건 정부가 진심으로 나라와 경제와 서민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후대책이 선거철 쏟아지는 공약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 서민의 눈에는, 그간 말로 떠벌이고 행동해온 정부의 모습에서 그 이상을 발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미FTA 국회 비준 동의가 강행될 시,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의 시민으로서, 유네스코로부터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시민단체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는, 당당히 국제법적으로 보장된 문화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비준되지 않은 한미FTA’도 문화다양성협약에 위배되지 않도록 논의를 확장시켜야 한다.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다. 국회가 오직 하나, 국민만을 생각해 주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국회는 행정부의 거수기가 아니다.


2011년. 11월 21일
한미FTA 비준을 반대하는 문화예술언론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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